아리스토텔레스의 생애와 사상

   生涯와 人間像---세계의 대사상(1972년, 휘문출판사) 제1권 복사함.

  不遇한 時節의 일들---불우했다고만 볼 수 없고, 요즘말로 `금수저`? 는 아니지만 그래도 넉넉하게 잘 살았겠네, 부모가 의사였으면 아무래도 잘 살았겠지? 그러나 어린 나이에 양친을 잃은 것은 많이 안타깝다. 어린 나이에 상심이 컸겠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는 기원전 三八四년 마케 도니아의 칼키디케(Chalkidike) 반도 북동해안에 위치해 있는 그리스의 식민도시로서 오늘날의 스타브로스(Stavros) 에 해당되는 스타게이라(Stageira)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부친 니코마코스(Nikomachos)는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 스(Asklepios 호머에 의하면 그는 신이 아니라 실제로 의사이었으며 그의 두 아들도 그리스 군대의 군의관이었다. 고 한다)의 후예이었으며 그의 모친 파이스티스(Phaistis) 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만년에 신변의 위험을 모면하기 위 하여 피신하여 간 바 있는 유보이아(Euboia)섬의 칼키스 (Chalkis) 태생이었다. 니코마코스는 선조의 업을 계 승하여 의술을 직업으로 삼고 마케도니아 왕 아뮬라스 (Amyntas) 二세의 시의(侍醫)로서 봉사하였으며, 의학 이나 자연과학에 관한 저술가로서도 그 지방에 알려져 있 었다. 그러므로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유년시기를 마케도니아수도 펠라(Pella)에서 보냈으리라고 추측된다. 한편 고대 그리스의 저명한 의사였던 갈레노스(Galenos)의 말에 의하면, 아스클레피오스의 집안은 대대로 자손에게 해부학의 훈련을 시키는 것이 관례이었으므로, 아리스토텔레스도 이러한 훈련을 받고, 부친의 의술을 도왔을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가 그의 철 학 속에서 자연과학, 특히 생물학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고, 더 나아가 그의 철학적 사상 자체가 구체적 현실에 대한 관찰을 발판으로 삼고 있는 것도 유년시절부터의 환경의 영향 내지 의사로서의 부친으로부터 받 은 감화 때문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일찌기 소년시절에 양친을 여이고, 프로크세노스(Proxenos)라는 친척의 손에 양육되었다.

  플라톤의 影響思想批判

  그 후 一八세 때에 그는 아테나이로 가서 플라톤의 아카메메이아(Akademeia)에 들어가 플라톤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10년간 그곳에서 학문을 탐구하였다. 그동안 플라톤으로부터 사상적으로 깊은 영향을 받았음은 물론이려니와, 그의 지칠 줄 모르는 근면한 탐구와 탁월한 재능 때문에 플라톤으로부터 독서가(讀書家)아카데메이아의 예지(叡智)니 하는 애칭으로 불리어질 만큼 극진한총애를 받았으며, 근면이 지나쳐 플라톤은 심지어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교제가 필요하다고까지 말하였다고 전한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의 뛰어난 재능은 점차로 자신의 철학적 입장을 부각시키기 시작하였으며, 이와 더불어 중요한 철학적 문제에 관하여 경차 스승 플라돈과의 사이에 견해의 차이를 발견하기에 이르렀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그의 저서들 속에서 플라톤의 철학적 이론들을 가차없이 비판하고 있음은 사제 간의 이러한 견해 차이에서 온 결과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의 매도는 흔히 후세의 사람들로부터 스승에 대한 배은망덕이라고 비난을 받기도 하였으며, 플라톤 자신도 망아지들이 자기들을 길러준 어미를 걷어차듯이 아리스토텔레스는 나를 걷어찬다고 말하였다고 한다. 그러 나 플라톤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비판은 다만 사상적인 견해의 차이로 말미암은 것이요, 결코 스승에 대한 악이나 교만에서 온 것은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가 플라톤을 가리켜 악한 인간들에게는 찬양할 권리조차 없는 분이며, 그의 생활과 가르침을 통하여 행복하고 동시에 선하게 되는 길을 제시해 준 분이라고 추앙하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도 짐작할 수가 있다. 미상불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저서에서, 플라톤의 학설을 비판한다는 것은 자기들 사이의 정리 때문에...14

제공된 이미지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생애와 인간상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 아리스토텔레스는 기원전 384년 마케도니아의 스타게이라에서 태어났습니다.
  • 부친 니코마코스는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의 후예이며 마케도니아 왕 아뮬라스 2세의 시의였습니다.
  • 모친 파이스티스는 유보이아섬의 칼키스 태생입니다.
  • 부친은 의학이나 자연과학에 관한 저술가로도 알려져 있었습니다.
  • 아리스토텔레스의 집안은 대대로 해부학 훈련을 시키는 관례가 있었으며, 이는 그의 자연과학, 특히 생물학에 대한 관심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 그는 소년 시절에 양친을 여의고 친척인 프로크세노스(Proxenos)의 손에 자랐습니다.
  • 18세 때 아테나이의 플라톤 아카데메이아에 들어가 10년간 학문을 탐구하며 플라톤에게 깊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사상적 이론들을 비판했지만, 이는 스승에 대한 악의가 아닌 순수한 학문적 견해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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